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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6 13:36
70년 만에 노동자들이 일본에 세운 강제징용노동자像
 글쓴이 : 인천본부
조회 : 1,961  

70년 만에 노동자들이 일본에 세운 강제징용노동자像

양대노총 8.24 일본 망간광산에서 제막식... 2년 전 ‘우키시마號’ 합동추모제가 계기

# 그리웠습니다. 보고싶었습니다.
  눈부신 햇살, 어머니의 미소, 고향의 흙내음, 꼭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제라도 가렵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나와 그리운 이가 있는, 그리운 내음이 있는 그곳으로

 8월 24일 오후4시 일본 교토 인근 단바시 망간광산 갱도 입구.
 하얀 천이 벗겨지자 갈비뼈가 선명한 야윈 몸에 한 손은 곡괭이 한 자루를 쥐고, 다른 한 손을 들어 눈부신 햇빛을 가리는 모습의 청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70여 년 전 식민지 노예로 먼 타국에 끌려와 강제노역으로 고통받고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가 서 있는 듯하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조합원 모금으로 마련한 기금으로 일본 현지에 70년 만에 처음으로 강제징용조선인 노동자像을 건립했다. 동상은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작가로 알려진 김운성․김서경 부부작가가 제작했다. 양대노총은 이번 행사를 위해 민주노총 46명, 한국노총 24명 등 총 70여 명의 참가단을 구성했다. 지역에서 징용노동자상 건립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인천본부도 본부장과 실무담당자가 참여했다.

 제막식에 인사말에서 민주노총 박석민 통일위원장은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像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닌 미래를 위한 우리의 뜨거운 결의의 상징임을 잊지 말고 노동자 민중들의 땅인 전국 곳곳에 노동자像을 세워 나가자.”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들의 억울한 희생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자”고 제의하였다. 이번 행사를 위해 일본공항에 도착했던 최종진 민주노총위원장 직무대행은 일본의 입국거부로 되돌아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참가단은 제막식에 앞선 오전11시에는 마이즈루 현지 추모사업회가 주관하는 '우키시마號 침몰 희생자 합동추모제’ 에 참석했다. 우키시마 호는 일본으로 강제징용 되었다가 귀국하던 수천 명의 조선인을 태운 귀국선으로 1945년 8월 24일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로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500여 명을 제외한 전체 인원이 사망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배가 침몰된 지역의 주민들은 ‘순난자 추모비’를 건립한 뒤 매년 8월 24일 교토부와 교토시, 마이즈루 현지 추모사업회, 재일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합동추모제를 열고 있다. 양대노총은 작년에 이어 2년 째 추모제에 참여한다. 이 추모제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의 시발점이 되었다.

 양대노총은 두번째 강제징용조선인노동자像을 내년 3월 1일 경 서울에 건립할 예정이다. 이후 일본이 숨기기에만 급급한 가해역사에 대한 올바른 진상규명과 과거 청산을 위해 강제징용노동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사업들을 펼철 갈 계획이다.

 단바 망간광산은 교토 시내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있다. 망간은 90% 정도의 용도가 철과 섞어 대포의 포신이나 총신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일본은 전쟁의 필수 군사물자인 망간 생산을 위해 조선에서 노동자들을 강제연행해 갔다. 강제연행은 200만~300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60%가 광산으로 갔다고 한다. 강제징용노동자들은 무릎을 꿇고 겨우 기어들어갈 수 있는 갱도에 들어가 200kg의 망간을 5시간씩 짊어지고 운반했다고 전해진다.
 16세에 이 탄광으로 끌려와 일했던 고 이정호씨는 강제징용의 참상을 알리고자 사비를 털어 폐광산을 매입해 1989년 '단바 망간기념관'을 열었다. 돈이 없어 가족들과 갱도를 정비하고 전시관을 꾸몄던 그는 진폐증으로 돌아가셨다.
 지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 이용식 관장이 운영한다. 일체의 보조금 없이 사비로 운영되는 일본 유일의 강제징용 기념관은 매년 극심한 재정난으로 2009년 폐관되었다가, 한일 양국 NGO들의 지원으로 2012년 재개관했다.
 이용식 관장은 "3천~4천만명의 아시아인을 살육하고 강제연행한 일본은 지금 자신의 가해역사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며,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자료를 남겨 미래의 이정표가 되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